스페인 팜플로나에서 매년 열리는 산 페르민 축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황소 달리기(Running of the Bulls)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행사는 단순한 스릴 체험을 넘어 종교적 기원, 지역 공동체의 전통, 관광 산업, 그리고 동물권을 둘러싼 논쟁까지 아우르는 복합적 문화 현상이다. 본문에서는 축제의 역사와 기원,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장면과 감정, 그리고 오늘날 이 축제가 직면한 사회적 논란과 국제적 가치를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산 페르민을 기리던 행렬에서 세계적 축제로
산 페르민 축제(San Fermín Festival)는 스페인 북부 나바라 지방의 수도 팜플로나에서 매년 7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그 뿌리는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회와 시민들은 나바라의 수호 성인인 성 페르민(Saint Fermín)을 기리기 위해 성대한 종교 행렬과 제의를 거행했다. 전설에 따르면 성 페르민은 프랑스 아미앵에서 태어나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다 순교한 인물로, 그의 믿음과 희생은 나바라 사람들에게 깊은 영적 상징으로 남았다. 매년 여름, 주민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도시의 안녕과 풍요, 재난으로부터의 보호를 기원했다. 이 의식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서서히 세속적 오락 요소와 결합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며 도시 축제에는 연극, 음악, 시장, 연희가 추가되었고, 16세기 이후에는 스페인 전역에서 유행하던 투우와 황소 몰이가 더해졌다. 축제의 성격은 점점 종교 의례, 민속 오락, 공동체 연대라는 다층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산 페르민 축제로 진화했다. 현재 축제는 7월 6일 정오의 개막 선언인 추피나조(Chupinazo)로 시작된다. 시청 광장에 수만 명이 모여 폭죽이 하늘로 솟아오르면 군중은 흰옷과 붉은 스카프 차림으로 환호하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지는 일주일 동안 미사, 성인의 가마 행렬, 전통 음악 공연, 불꽃놀이, 거리 공연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매일 아침 황소 달리기가 도시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종교적 경건함과 대중적 흥겨움이 공존하는 독특한 형태, 바로 그것이 산 페르민 축제의 본질이다.
황소 달리기와 팜플로나의 일주일
산 페르민 축제의 압도적인 상징은 황소 달리기(Encierro)다. 매일 아침 8시, 신호탄이 울리면 6마리의 투우용 황소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좁고 굽은 구시가지 돌길을 함께 달린다. 약 850미터 구간은 불과 3~5분 만에 끝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의 긴장은 영원히 기억될 만큼 강렬하다. 참가자들은 전통적으로 흰 셔츠와 바지에 붉은 스카프와 허리띠를 착용한다. 흰옷은 신앙적 순수와 평등을, 붉은색은 성 페르민의 순교를 상징한다. 축제 기간 동안 팜플로나의 거리는 이 상징적 색채로 가득 차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대가 된다. 달리기 자체는 극도의 위험을 동반한다. 600킬로그램이 넘는 황소가 좁은 골목을 전력질주하는 동안 사람들은 몸을 피하거나, 때로는 황소와 나란히 달리며 짜릿한 스릴을 경험한다. 매년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고, 역사적으로 수십 건의 사망 사고도 기록되었다. 그럼에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경험해야 할 도전이라며 이곳을 찾는다. 일부는 이를 용기와 성숙의 통과의례로 여기며, 어떤 이들은 죽음을 무릅쓴 스릴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황소 달리기만이 전부는 아니다. 낮에는 거리 공연과 퍼레이드, 전통 춤이 이어지고, 아이들은 인형극과 음악회에서 축제의 즐거움을 나눈다. 오후에는 투우장이 관중으로 가득 차고, 아침에 달린 황소들이 투우사와 맞붙는다. 투우는 스페인의 문화적 전통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논란거리이기도 하다. 황소 달리기를 통해 극적인 긴장과 환희를 경험한 군중은, 오후 투우장에서 전혀 다른 감정인 잔혹함과 예술성, 논란 속의 아름다움을 목격한다. 밤이 되면 불꽃놀이와 음악, 춤이 도시 전체를 감싸며, 팜플로나의 골목과 광장은 잠들 줄 모르는 열기로 가득 찬다. 일주일 동안 도시 전체가 삶과 죽음, 신앙과 오락, 경건함과 해방감이 뒤섞인 거대한 무대로 변한다.
전통, 관광, 그리고 논쟁 속에 남는 울림
산 페르민 축제는 오늘날 거대한 국제적 문화 현상이다.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팜플로나를 방문하며, 지역 경제는 폭발적으로 활성화된다. 숙박업과 음식점, 교통, 기념품 산업은 축제 기간 동안 막대한 수익을 얻고, 스페인의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경제적 효과만으로 이 축제를 설명할 수는 없다. 산 페르민은 도시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응축된 행사이며, 세대를 거쳐 이어진 문화적 DNA를 보여주는 증거다. 주민들은 수개월 전부터 축제를 준비하고, 각종 행사를 조직하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몸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이 축제를 둘러싼 논란도 무겁다. 동물 보호 단체들은 황소 달리기와 투우가 동물 학대라 비판하며, 매년 시위와 캠페인을 벌인다. 국제 사회에서도 전통의 보존과 동물 권리 사이의 갈등이 계속해서 충돌된다. 일부 스페인 지방에서는 이미 투우를 금지했지만,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단순히 동물권 문제를 넘어, 전통은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 그리 현대 사회가 과거의 관습을 어떻게 재해석해야 하는지를 묻는 보편적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페르민 축제의 매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위험과 스릴, 공동체적 연대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흰옷과 붉은 스카프, 아침의 총성과 함성, 황소의 거친 숨결과 사람들의 환호는 매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팜플로나에서의 일주일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정서를 이루는 두려움, 용기, 해방, 연대를 체험하는 특별하고 드문 무대다. 결국 산 페르민 축제는 전통과 논란, 신앙과 오락, 죽음의 위험과 삶의 환희가 교차하는 인간 드라마다. 앞으로도 이 축제는 뜨거운 논쟁과 함께 이어지겠지만,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강렬한 한순간을 선물할 것이다. 팜플로나의 골목에서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함성은, 전 세계인들에게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자유와 용기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