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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기온 마츠리, 등불과 야마보코로 이어가는 천년의 여름 축제

by buzzreport24 2025. 8. 25.

교토 기온 마츠리 관련 사진


일본 교토에서 매년 7월 열리는 기온 마츠리는 천 년 역사를 이어온 일본 대표 여름 축제로, 화려한 야마보코 수레, 전통 의상과 음악, 그리고 유카타 행렬이 어우러진다. 본문에서는 역병 퇴치 의식에서 비롯된 축제의 기원, 교토 여름밤을 수놓는 생생한 현장감, 그리고 기온 마츠리가 전통문화와 공동체, 세계적 의미를 어떻게 전하는지 살펴본다.

등불이 켜지는 순간, 교토가 달라진다

기온 마츠리의 시작은 웅장한 역사적 이야기보다도 감각적 울림으로 먼저 다가온다. 해가 저물고 골목마다 초롱과 등불이 하나둘 켜질 때, 교토는 낮 동안의 고요함에서 깨어나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골목 입구마다 작은 제단이 세워지고, 현지 상점 주인들은 문패를 닦고 향을 피우며 신에게 길을 청한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모이는데, 그 끝에는 오늘을 위해 수개월 동안 준비한 야마와 호코 즉 야마보코가 선다. 나무를 짜 맞춘 장대한 수레, 삼베와 비단으로 감싼 깃발, 수백 년 묵은 태피스트리(Tapestry)와 금속 장식은 움직이는 미술관이라는 표현을 무색하게 할 만큼 압도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소리다. 북의 깊은 울과 피리의 선율, 어린아이들의 노래가 어우러져 마치 도시 전체가 거대한 악기가 된 듯 울린다. 이 축제는 한때 재앙과 질병을 잠재우기 위한 기도에서 시작되었다. 그 기도의 흔적은 오늘도 남아, 길 모퉁이마다 작은 부적과 장식, 한 줌의 쌀과 술이 놓인다. 관광객은 카메라를 드는 대신, 잠시 그 리듬과 호흡을 느끼며 행렬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누군가는 수레를 묶은 밧줄의 매듭을 살피고, 누군가는 장식의 올 하나를 바로잡는다. 수레는 단지 교통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동네의 기억이 응축된 구조물이다. 이 도시에서 축제란 누가 주최하고 누가 즐기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책임지고 누가 이어 가는가의 문제다. 불빛이 도시에 내려앉는 그 순간, 교토는 보는 도시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로 탈바꿈한다. 누군가의 노동과 기다림, 이야기가 고스란히 결을 이루며 저녁 공기 속으로 번진다.

야마보코가 움직일 때, 거리가 숨을 멈춘다

행렬의 날, 수레는 길을 차지하지만 길을 가로막지 않는다. 그 자체로 길이 된다. 가장 큰 호코는 수십 명이 당기는 줄에 몸을 싣고 조금씩 움직인다. 네 바퀴 아래 깔린 대나무 매트가 츠지마와시라 불리는 교차로 회전을 도와주는데, 거대한 목재가 삐걱이며 각도를 틀 때 사람들의 숨이 멎는다. 북이 세 번 울리고, 구령이 떨어지면, 줄이 당겨지고, 수레는 허리를 비트는 거인처럼 방향을 틀어낸다. 한 번의 회전에 수백 개의 손과 시선, 땀과 함성이 겹친다. 장식은 화려하지만 기능을 배반하지 않는다. 장인의 손길로 묶인 매듭 하나가 수레의 균형을 잡고, 못 한 개를 아끼는 전통 방식이 오히려 내구성을 보장한다. 비단 태피스트리에는 먼 나라의 문양과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바다를 건너온 직물, 시대를 넘어 교체된 일부 장식, 그리고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 목재 틀 수레는 교토가 세계와 주고받은 시간의 증거다. 전야제에는 전통 가옥이 안방을 개방해 전시된 병, 도자, 직물을 감상할 수 있다. 유리 진열장 너머가 아니라 마룻바닥 위에서 보는 유물은 살아 있는 사용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명한다. 사람들은 유카타 자락을 여미며 가옥의 향과 습기를 맡고, 제단 앞 작은 종을 울리며 한 해의 무사함을 빈다. 노점의 소리와 냄새는 묘하게 경건함을 해치지 않는다. 타코야키의 고소함과 사케의 알싸함, 부채질하는 손끝의 바람이 북소리와 섞여 여름을 재현한다. 장비를 든 자원봉사자들이 수레바퀴를 점검하고, 동네 어르신이 아이들의 손목에 이름표를 매단다. ‘관광’이라는 단어가 뒷전으로 밀려난다. 여기서 사람들은 손님이 아니라 역할을 부여받은 구성원이 된다. 길가의 안내 표식, 응급요원 동선, 쓰레기 분리수거 스테이션, 한 방향 이동을 유도하는 로프 모두가 긴 시간 축적된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축제의 품격은 장식의 화려함이 아니라, 수천 명이 움직일 때조차 누군가의 일상이 부서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배려에서 드러난다. 행렬이 지나간 자리에 떨어진 꽃잎이 쓸려 나가고, 장식의 먼지가 다시 상자 속으로 들어갈 때, 사람들은 이미 내년을 준비한다. 수레의 바큇살이 갈리고, 장식의 실밥이 정리되고, 밧줄의 올이 손바닥에서 길들여진다. 축제는 하루의 불꽃이 아니라 매일의 손질로 유지된다.

천년의 시간을 잇는 손길, 오늘을 견디는 기술

기온 마츠리는 과거의 장식이 아니라 현재의 방법이다. 역병과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행렬은 공동체가 위기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은 함께 걷고, 무게를 나누어 들며, 길을 비우고, 흔적을 씻는다. 이 간단한 동사들이 도시를 지탱한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수치로 환산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관계의 재구성이다. 상점과 신사, 지역 주민과 관광객, 장인과 자원봉사자가 모두 한 뜻으로 모여 프로젝트를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전승은 의무가 아닌 참여가 되고, 전통은 박물관 유리장 안에서가 아니라 길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교토의 장인정신은 손으로 고쳐 쓰기로 요약된다. 나무를 새로 자르기보다 덧대고, 실밥을 끊기보다 이어 붙인다. 그 기술은 오래되어 낡은 것이 아니라, 오래 쓰기 위해 고안된 오늘의 기술이다. 기후와 안전, 혼잡과 소음 같은 현대 도시의 과제도 동일한 방식으로 다뤄진다. 버리는 대신 고쳐 쓰고, 막는 대신 흐르게 하고, 지시하는 대신 안내한다. 그래서 이 축제는 유산인 동시에 매뉴얼이다. 다른 도시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운영의 언어, 위험을 분산하고 참여를 확장하는 구조, 수익을 지역에 환원하는 회로가 여기에 있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한 도시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질문을 듣는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며, 무엇을 함께 나눌 것인가. 답은 늘 수레 곁에 서 있다. 장식의 흠집을 문지르는 손, 지나가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손, 비에 젖은 밧줄을 말리는 손. 그 손들이 천년을 잇는다. 북소리가 멈추고 등불이 꺼져도, 내일의 거리는 다시 준비된다. 기온 마츠리는 끝나지 않는다. 도시가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기억하는 한, 여름은 매해 돌아와 같은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이 축제를 본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거리에서 작은 변화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쓰레기봉투를 더 준비하고, 길을 비우고, 아이의 손을 잡고, 낡은 것을 고쳐 쓴다. 그렇게 한 도시의 기술이 다른 도시의 일상으로 번진다. 기온 마츠리는 결국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가장 화려하고도 겸손한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